아니 실제로는 어제 그렇게 급히 가버리셨다.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점심 식사를 받아 먹던 그 시간,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가버리셨다.

먼저 사고 소식을 전달받은 어머니가 간병인을 구해놓은 뒤 내려가시고, 연락이 잘 되지 않아 불길한 생각이 문득문득 솟구쳐 올랐지만 참고 참아 오늘 아침에 다시 연락이 닿아보니, 가버리셨단다.

서른,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나는 여전히 우리 집 막내 울보 역할인가 보다.

수술한 게 행여 잘못될까 걱정되어 내려오지 말라는데, 마지막 가는 길조차 제대로 배웅 못 해드리니 이런 불효가 더 없다 싶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급히 돌이켜보지만 흔한 경상도 부자지간인지라 실없는 농담에도 웃어주시는 몇몇 장면 빼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별 탈 없고 잘 지내면 다행이지라는 안부만 교환했기에.

아버지, 우리 아부지

내 어릴 때부터 다친 곳이 많아 투잡, 쓰리잡 뛰시면서 필요한 수술 다 시키시고,

힘든 내색 없이 삼 남매 전부 뒷바라지하셔서 경상도에서 서울로 대학 다 보내시고,

명절에야 잠깐 내려가서는 한두 시간 얼굴 보고는 다시 밭 매러 가심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으며,

할아버지 돌아가신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장 노릇하여 당신의 어머니, 두 형제와 여동생 모두 먹여 살리신 우리 아부지.

그간 고생 많으셨소. 참 고생 많으셨소.

내 어릴 때 술 먹고 고함치던 아버지 모습,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더라.

얼마나 삶이 고팠으면 그럴까 싶어서.

마지막 가실 때조차 일하다가 가버리셨다는 소식이 이 막둥이 눈가와 가슴을 제일 찢어놓소, 우리 아부지.

못난 아들이라, 무뚝뚝한 아들이라, 손자 얼굴 보고 싶다 해도 보여주지 못한 아들이라 참 미안해요.

거기서는 술 그만 잡수시고, 치열하게 살아오고 고생한 만큼 못 해봤던 것 다 누리고 당신을 위해 사시오.

나도 후회 없게 끝까지 살다 다시 만나는 날에는 웃으며 업어드릴 테니.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 우리 아부지 손을 보니 다시 눈물이 흐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