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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이 여러 번 만나고 마음이 점점 깊어질 무렵,
아빠의 일본 체류가 끝나는 때가 다가왔습니다.
업무 때문에 일본에 와 있었던 것이니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날짜가 가까워지니 그제서야 조금씩 실감났다고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엄마 그때 안 잡았어?”
「どうやって?」
(어떻게?)
“가지 말라고.”
엄마가 웃었습니다.
「そんなこと言えるわけないやん。」
(그런 말을 어떻게 해.)
역시 엄마입니다.
속으로는 서운해하면서도
입으로는 절대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아빠 쪽에서 먼저 말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연락을 계속하고 싶다고.
그리고 자주 만나러 오겠다고.
그래서 당시 조금씩 보급되기 시작하던
이메일을 써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편지가 메일로 바뀌었다
“엄마 그때 이메일 할 줄 알았어?”
「よく知らんかった。」
(잘 몰랐어.)
“아빠가 알려줬어?”
「使い方をいろいろ教えてくれた。」
(사용법을 이것저것 알려줬어.)
아빠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편지만으로 연락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국제전화는 비싸니까
메일을 쓰면 훨씬 편할 거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처음에는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手紙のほうが好きやったから。」
(편지가 더 좋았으니까.)
“메일이 훨씬 빠르잖아.”
「だから。」
(그러니까.)
“빠른 게 왜 싫어ㅋㅋㅋ”
「手紙は待つ時間もあるでしょう。」
(편지는 기다리는 시간도 있잖아.)
엄마에게는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까지도
관계의 일부였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는
메일이 훨씬 현실적인 연락 수단이 됐습니다.
짧은 이야기는 메일로,
조금 길게 쓰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편지로.
둘은 그렇게 두 가지를 섞어가며 연락했다고 합니다.
메일이 생겼다고 해서
편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엄마는
아빠가 가끔 한국에서 보내오는
손편지를 더 좋아했다고 해요.
국제전화는 가끔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부터는
가끔 국제전화도 했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마음껏 하지는 못했습니다.
전화비가 정말 비쌌으니까요.
“얼마나 비쌌는데?”
「高かってん。本真に。」
(비쌌어. 정말.)
“그래서 몇 분 정도 했어?”
「時計を見ながら話してた。」
(시계를 보면서 이야기했어.)
좋아하는 사람과 전화하면서도
한쪽에서는 계속 시간을 보는 겁니다.
5분.
10분.
15분.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전화요금이 계속 머릿속에 있고ㅋㅋㅋ
그래서 전화하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생각해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면
준비했던 이야기는 금방 끝나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길어졌다고 해요.
그래서 한국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여기까지 몇 달 동안 천천히 연락해놓고,
정작 실제로 만난 뒤에는
이야기가 굉장히 빨리 진행됐습니다.
서로 이미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 이야기,
가족 이야기,
직업 이야기,
아이에 대한 생각,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서로의 부모님은 어떻게 할지.
보통 연애하면서 몇 년에 걸쳐 알게 되는 내용을
둘은 만나기도 전에 편지로 상당 부분 이야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메일과 편지, 가끔씩 하는 국제전화로
그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약속대로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한달에 한번씩은 엄마를 보러 일본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래서 실제 만남은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게
얼굴과 목소리와 체온이 생긴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난 후 바로 연애를 시작했고,
국경을 넘는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엄마가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엄마, 첫 번째가 아빠 만나러 나간 거였잖아.”
「うん。」
(응.)
“그럼 두 번째는 아빠하고 결혼한거야?”
엄마는 잠깐도 고민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いや。パパと結婚するって決めたのは当然なこと。」
(아니 아빠하고 결혼하기로 결정한건 당연한 거였고)
"ㅋㅋ"
「パパについて韓国に行くって決めたこと。」
(아빠를 따라 한국에 가기로 한 것.)
저는 이건 듣자마자 이해가 됐습니다.
첫 번째보다
훨씬 큰 결심처럼 느껴졌거든요.
엄마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가족도 일본에 있었고,
친구들도 일본에 있었고,
익숙한 거리도, 익숙한 음식도,
평생 살아온 생활도 모두 일본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두고
한국으로 가기로 한 겁니다.
지금이야 한국과 일본이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오가는
가까운 나라처럼 느껴지지만,
그때 엄마에게 한국은
정말 낯선 외국이었습니다.
한국어도 전혀 못했고,
문화도 달랐고,
음식도 달랐고,
가족도 친구도 한 명 없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진짜 안 무서웠어?”
엄마가 웃었습니다.
「怖かったよ。」
(무서웠지.)
“아는 사람 있었어?”
「一人もおらんかった。」
(한명도 없었어.)
“한국어는 좀 했어?”
「全然やった。」
(전혀 못했지.)
“그런데 왜 갔어?”
엄마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好きな人がおったから。」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뭔가를 꼭 이루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특별히 동경했던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같은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엄마의 첫 번째 결심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에는
한 번도 실제로 만나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서웠지만,
안 만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나갔습니다.
두 번째에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나라가 있었습니다.
무서웠지만,
그곳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갔습니다.
엄마는 원래 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걱정이 많고
낯선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무서운 쪽으로 한 발을 내디뎠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 부모님 좀 이상한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기준으로 생각해도 엄청 빠르잖아요ㅋㅋㅋ
처음 만난 날 바로 연애를 시작하고,
엄마는 아빠를 따라 나라까지 옮기고,
몇 달 만에 결혼을 결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커서 다시 생각해보니
꼭 그렇게 짧은 연애였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처음 만난 날을 기준으로 하면 몇 달이지만,
그 전부터 이미 수없이 많은 편지가 오갔습니다.
한 사람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그걸 글로 아주 오랫동안 읽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엄마가 한국으로 따라온 건
몇 달 만난 남자를 덜컥 따라온 것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편지 속에서 알고 지냈고,
실제로 만나보니 그 문장과 거의 똑같았던 사람과
이제는 같은 곳에서 살아보기로 한 선택이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수다V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