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어물전과 칠패시장을 묘사한 고문서 또는 역사 기록 이미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한양의 상권은 딱 한 곳, 종로가 꽉 잡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명동 한복판이나 강남 테헤란로 쯤 보면됨.              
조선시대 육의전 6개 상점(선전, 면주전, 면포전, 저포전, 지전, 내외어물전) 구성과 금난전권 설명 도해
    이곳에 둥지를 튼 관허 상인들, 즉 시전(市廛) 상인들은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대신 엄청난 특권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국사 교과서에서 지겹게 들었던 금난전권이다.   (금난전권: 조선 후기 국가의 허가를 받은 시전 상인들이 상권을 독점하기 위해,   허가받지 않은 난전(사상)의 상업 활동을 금지할 수 있었던 특권)                
조선시대 금난전권(禁亂廛權) 한자 표기
    "내 허락 없이 장사하는 놈들은 싹 다 잡아들여!"              
조선시대 이현시장과 칠패시장을 나타낸 역사 지도 또는 삽화
    그러나 17~18세기(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한양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상업 작물 재배가 활발해지면서,   관 주도의 시전만으로는 늘어난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음   이 틈을 타서 성곽 외곽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설 시장들이   바로 이현(배오개, 동대문 인근)과 칠패(남대문 밖)였다          
  칠패는 단순한 시장 이름이 아니라 조선의 군사·치안 편제에서 유래했음            
조선시대 어물전 또는 칠패시장의 생선 판매 모습을 담은 역사 삽화
    당시 한양의 치안을 담당하던 포도청(좌포도청)은 순라군을 8개의 구역(패)으로 나누어 순찰하게 했는데   그중 제7패가 남대문 밖에서 연지(현재의 서울역 인근) 일대를 담당했는데,   순라군들이 주둔하고 사람들이 북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전(불법 노점상)이 깔리기 시작했고,   아예 지명 자체가 '칠패'로 굳어져 버린 것임           
조선시대 칠패시장 해물상 페페가 서소문 밖 빈민가에서 장사하는 모습을 그린 일러스트
    칠패가 위치한 서소문 밖과 남대문 밖은 지방에서 상경한 유민들과 빈민들이 바글바글 모여 사는 거주지였고   또한 한강의 마포·서강 나루터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전국의 물산(특히 해산물)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음   그러면 한강에서 나루터에서 물건 떼오기도 딱 좋은 위치네?   자연스럽게 이곳은 종로 시전 상인들의 눈을 피해 형성된 거대 암시장, 아니 자유시장으로 성장하게 됨            
조선시대 칠패시장 유통구조 인포그래픽: 직거래로 중간도매 생략, 저렴한 해물 판매 과정
    칠패를 조선의 3대 시장으로 만든 결정적인 품목은 바로 어물(해산물)이었음   칠패의 성장은 어물 유통 경로의 변화와 직결됨   기존 유통 경로 :   한강 나루터(경강상인) ->   여객주인(위탁매매) ->   내어물전·외어물전 (시전) ->   소비자(이 과정은 단계가 많고 시전의 마진이 붙어 가격이 비쌈)           칠패의 유통 경로(비공식/난전): 한강 나루터 ->   중간 도매상 ->   칠패 상인 ->   소매상/행상 ->   소비자(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시전을 배제하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음)            
칠패시장과 어물전의 거래량 차이를 비교한 만화 일러스트
    선상(선박 운송 상인)들이 공식 납품처인 시전   대신 현금을 들고 오는 칠패 상인들에게 물건을 넘기기 시작했음   그 결과 칠패의 어물 거래량이 시전의 10배에 달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음.   행상(보부상)들 입장에서도 칠패에서 떼오는   물건이 훨씬 싸고 싱싱했기 때문에 시전을 외면하게 된거임                거기에 칠패의 사상도고(민간상인)들은 자신이 직접 지방에 내려가 어물을 구입하거나,   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어물을 길목에서 매점하는 방법으로   어물을 확보함으로써 시전 어물전에의 어물공급에 차질을 빚게 만들었음             
조선시대 어물전에서 동전이 짤랑거리며 거래되는 활기찬 시장 풍경
  "거기 스탑! 어이, 선상님! 오시느라 고생했수. 그 고등어, 어디로 갈라구?"               선상: "아, 예. 종로 시전 '내어물전' 박씨네 가게로 가야죠. 외상값도 받아야 하고..."                 칠패 김 씨: "에이, 거기가 어딥니까? 여기서 십 리 길이야. 그리고 그 양반들, 물건 들이밀어도   '어음' 끊어준다며? 돈 받으려면 반년 걸린다던데?"               선상: 뭐 좆같긴 한데 거래처가 딱히 없으니....                 칠패 김 씨: "자, 복잡하게 살지맙시다 . 내가 지금 여기서 전량 현금 박치기! 게다가 웃돈 10% 더!   어때요? 물건 넘기고 바로 내려가서 한탕 더 뛰셔야지."                     선상: "어어...이래도 되나...? ...... 콜!! 아따, 형님 화끈하시네!"               이렇게 물건이 도성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칠패에서 증발해버린다.                     시전상인: "야! 왜 물건이 안 와! 배 들어왔다며!"                 직원: 좆됨요 ... 마포에서 칠패 놈들이 싹 쓸어갔답니다요.                 시전상인:  뭐야?! 이 근본도 없는 난전(불법 상인) 놈들이! 당장 포도청에 찔러!   금난전권(독점권) 발동해! 싹 다 잡아들여!                 시전상인: "나으리! 저희가 나라에 세금(국역) 바치는 게 얼만데,   저 칠패 거지들이 우리 밥그릇을 깹니다! 콩밥을 먹여주십시오!"           시전상인은 관아에 찌르고, 금난전권 발동해서 칠패 상인들을 때려잡으려 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백성들은 싸고 질좋은 칠패를 원했고, 자본주의의 맛을 본 선상과 도매상들도 칠패 편이었다.                 한양 주부: "어머, 종로 가면 고등어 한 손에 5냥인데, 칠패 시장 갔더니 3냥이더라.   게다가 아가미가 벌떡벌떡해."   옆집 아줌마: "미쳤어, 미쳤어 종로를 왜 가? 거긴 도둑놈들이야."           칠패의 등장은 조선 초기에 설계된 '국가 통제형 상업 체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였다   시전 상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칠패 상인들을   '난전(불법 상인)'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려 했으나,   이미 시장의 대세는 칠패와 이현으로 기울어져 있었음   칠패 시장의 활성화는 단순한 장소의 변화를 넘어 경제권의 이동을 의미했음             정조: 아오, 시전 상인 이놈들은 맨날 '난전 잡아달라'고 징징거리는 게 일이네.   가만 보자... 시전 놈들이 독점권을 쥐고 있으니까 물건값을 지들 마음대로 올리잖아?   그러니까 한양 물가가 미쳐 날뛰지. 백성들은 비싸서 못 사 먹고,   칠패 같은 난전 상인들은 범죄자 취급받고... 이게 정상이야?   게다가 저 시전 상인들이 번 돈, 다 어디로 가?   뒤 봐주는 양반 늙은이들 뒷주머니로 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그 돈으로 쟤들이 정치 자금 써서 나 괴롭히는 거잖아.   이거 안 되겠다. 경제도 살리고, 내 정적들 돈줄도 끊고, 백성들 장바구니 물가도 잡는 방법 없나?   ..그냥 '금난전권' 저걸 없애버리면 되는거 아녀?   누구나 장사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면, 서로 경쟁하느라 물가는 내려갈 거고,   칠패 상인 같은 능력 있는 놈들이 세금 내면 국고도 튼튼해질 거고.   뭣보다 시전 놈들한테 뒷돈 받던 권세가들 똥줄 좀 타겠는데?   오케이, 이거다. 육의전(가장 중요한 6개 상점) 빼고 나머지 시전들의 특권, 오늘부로 싹 다 폐지하자고                 1791년, 정조는 마침내 칼을 빼 든다.   육의전(가장 중요한 6개 시전)을 제외한 나머지 시전의 독점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辛亥通共)' 조치를 단행하게 된것이다   다들 교과서에서 한번 쯤은 봤을것이다   정조: "앞으로 육의전 빼고, 아무나 장사해! 시전 니들이 난전 잡는 권한? 압수야.   꼬우면 니들도 실력으로 장사해서 이기던가!               물론 장점만 있는것은 아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정조는 "독점을 없애면 물가가 잡히겠지?"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좀 다르게 돌아갔다.   정조의 기대: 경쟁 -> 가격 하락 -> 백성 행복   현실: 자본가 등장 -> 물건 싹재기(매점매석) -> 꼬우면 비싸게 사든가 -> 물가 폭등   이는 당대를 살아가던 박지원의 허생전에도 지적하는 문제이다                  신해통공은 단순히 상업 규제를 푼 게 아니라,   조선을 지탱하던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조선도 황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맛을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된것이다